30년대 경성공간 안에서의 지식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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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서 론 Ⅱ. 본 론 방관자적 관찰자의 입장 타율적 근대화에 대한 비판 → 상념과 잠재의식현실 모순의 은폐Ⅲ. 결 론
본문
서 론 1930년대 와서 한반도가 일본의 대륙침략을 위한 병참기지가 되었고 그 역할은 특히 1937년 중・일 전쟁 직전에 가장 활발히 수행 되었다. 이 과정에서 조선총독부의 기능 및 식민지 수도 경성의 통치-행정기능도 늘어나는 등, 점차 발전되는 경성부의 현상을 소구모의 도식계획으로 감당할 수 없게 되자 1934년 조선 시가지 계획령이 마련되었다. 산전융웅, 대경성사진첩(경성출판사,1927)그러나 이 도시화는 한인들의 산업 및 생활수준을 고려하지 않은 채 진행된 것이어서 오히려 구획정리 과정 중, 문물제도의 획기적 개편, 사회시설의 정비, 생활편의의 향상 등 긍정적 이면보다는 시민 건강의 퇴폐, 범죄율 격증 및 도시계획령에 의한 구・중소상인의 몰락, 시민부담의 증가, 소시민의 토지상실 등 부정적 측면과 인구의 도시 집중화로 실업자의 격증을 낳았다.2) 김영모 “일제하의 사회계층의 형성과 변동에 관한 연구” 일제하의 민족생활사(아세아 문제연구소,1871)특히 지식인의 실업률을 심각하였는데 높은 교육열로 일본에 못지 않게 양산된 한인 지식인 계층은 설자리를 잃고 실업자가 되어 외관상으로 근대화된 서울 거리를 헤매게 되었다.더구나 일제치하에서 엘리트의 진입의 기회와 관료충원의 기회가 소수 친일적 사람들에 의해 독점되었기 때문에 지식인들은 물질적, 정신적인 면에서 충족감을 갖기 어려웠다. 따라서 한국 룸펜 인테리는 단순히 경제적 측면이 아니라 복잡한 윤리적 사회의 측면에서의 소외현상을 일으키게 되었다. 본고에서는 박태원의 소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거리” “피로”를 중심으로 그 시대의 경성공간에서 지식인들의 모습은 어떠했으며 그들은 어떠한 눈으로 타율적 근대화를 바라보고 있었는지 알아보기로 하겠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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