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월 25일 화요일

1905-1917년 러시아 도시지역의 사회적 안정성 문제 - 레오폴드 헤임슨

1905-1917년 러시아 도시지역의 사회적 안정성 문제 - 레오폴드 헤임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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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7년 혁명의 기원을 다룬 1920년대와 1930년대 초의 소련과 서방의 문헌을 검토하면, 공통된 가정들을 전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첫 번째 가정은, 다른 혁명들과 마찬가지로 1917년 혁명도 역사적 우연이나 바로 그 당시의 역사적 상황의 산물이 아니라 긴 역사적 과정 19세기 초 혁명적인 러시아 인뗄리겐찌야의 출현까지는 아니더라도 농노제의 폐지까지는 거슬러 올라가는 긴 역사적 흐름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의 결과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 가정은, 그럼에도 실질적으로 혁명을 촉발시킨 것은 제1차 세계대전의 영향이라는 것이다.이러한 공통된 가정이 스탈린 등장 이후 사라져 버렸고, 1917년 혁명 직전 10년에 대해 상반된 도식적 관점이 소련과 서방의 역사가들에 의해 제시되었다. 소련의 역사가들은 10월 혁명의 역사적 논리와 정당성을 보여주기 위해, 제1차 세계대전 직전의 몇 년 동안을 급속히 솟구치는 새로운 ‘혁명적 고조’의 시기로 제시한다. 즉, 1910-1911년 서서히 형성된, 스똘릐삔 반동기를 무너뜨리려는 혁명적 움직임이, 1912년 4월-5월 레나 금광 학살사건 이후 고조되기 시작했고, 이러한 혁명적 분위기가 계속 고양되어서 1913년 여름부터 볼셰비키가 준비하고 있던 결정적인 혁명적 전복이 1914년 여름경에는 곧 일어날 것 같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이 이러한 혁명적 흐름을 잠시 중단시켰고 전쟁 발발은 볼셰비키 당 조직에 대한 탄압을 용이하게 하고, 노동대중내의 아직 깨이지 못한 계층 사이에서 ‘국수주의적’ 감정을 불러일으킴으로써 불가피한 결과(혁명)를 일시적으로 지연시켰다는 것., 1915년 후반에야 비로소 혁명운동이 재개되어 2년 후에 결국 구질서를 압도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 서방측은 상반된 관점을 제시한다. 즉, 1905년 혁명에서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할 때까지 정치적 ․ 사회적 안정화 과정이 러시아의 모든 주요 생활영역에서 진행되고 있었으므로, 전쟁이 없었다면 혁명 - 적어도 볼셰비키의 권력 장악으로 겪게 되는 급격한 붕괴 - 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참고문헌
해당 자료는 레포트지에서 유료로 제공되는 자료입니다.출처 : http://www.reportg.com/search/view.php?rpID=106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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